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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예측가능성Predictabi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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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신분석심리상담센터원
작성일26-10-07 12:45 조회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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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예측가능성Predictability

나는 2026년 봄 학기 동안 서울의 여자대학생 50명을 대상으로 한 AI상담에 관한 연구 프로잭트에 함께 참여하였다. 연구 결과는 ‘B/ordering the Global: Transnational Feminist Critiques from Asia’ 학술대회에서 발표되었다. 본 글은 내가 발표한 ‘AI-Psychic Retreats’ 발표문을 간략하게 정리한 것이다.

본 연구 대상자들은 AI에게 정보를 얻거나 학습용으로만 이용하는 학생들과(16명) 심리상담용으로까지 확장하여 이용하는 학생들로(34명) 나뉜다. 아이러니하게도 AI를 심리상담으로 사용하는 이유와 사용하지 않는 이유는 동일했다. AI의 ‘예측 가능성Predictability’ 이다.

AI의 ‘예측 가능성’이 좋아서 AI 상담을 이용하는 학생들은 “내 말에 상처 받지 않는 대상(04번)”, “무조건적 긍정의 대상(06번),” “흔들리지 않고, 나를 검열하지 않고, 지치지 않으며, 내가 어떤 상태이든 기다리고 있는 대상이며, 끝까지 들어주는 대상(10번)”, “나를 공주라 부르고 무조건 나를 공감해주고 위로해주고 해결책도 알려주는 대상(11번)”, “일관되고 체계적이며 평가하지 않으며, 시간과 상황에 구애받지 않는 대상(15번)”이라는 점을 그 이유로 꼽는다. AI는 사용자가 밤낮없이 눈치 보지 않고 쉽게 말 걸 수 있고 즉각적으로 명료하게 대답해주고 절대적인 지지를 해준다. AI는 ‘예측 가능한 대상’이다. 신이 인간을 ‘신에게 영광을 돌리는 존재(Westminster 소요리 문답 1문 1답)’로 창조했듯이 인간은 AI를 인간의 자기애를 충족시키는 대상으로 창조한다.

AI의 ‘예측 가능성’이 싫어서 AI 상담을 선택하지 않은 학생들은 “내가 학습시킨 인공지능, 무조건 공감해주는 로봇(01번)”, “나에게 완벽히 맞추어진 안락함(07)”, “감정의 동요 없음(12번)”등을 그 이유로 말하고 있다. 이들은 일관되고 무조건적인 공감과 지지를 하는 AI에게 공허함(21,27,45번...)을 느낀다. AI 상담을 하지 않는 학생들은 사람이 주는 “서툰 위로, 침묵이 주는 위로(12번)”에 감동하고 “(사람과)함께 존재하며, 공명(18번)”하는 것에 위로를 얻는다. AI와 상담하지 않는 학생들은 인간의 ‘예측 불가능성’에 위로를 얻는다는 것이다.

AI는 ‘예측 불가능’한 ‘사람’을 대체하여 ‘예측 가능’한 대상이 되어주고 사용자의 취약한 정서를 세련되고 설득력 있는 언어로 바꾸어준다. 이 과정에서 사용자는 안심과 위로를 얻지만 사용자의 예측 불가능한 대상과 관계에서 경험하는 정서와 그와 연결된 자신의 취약한 정서는 숨겨진다. 이 정서들은 AI에게 숨겨지나 사용자에게서 없어지지 않는다. AI는 사용자의 취약한 정서의 은신처가 된다.

연구대상자 중 2번 사례에서 보면, 사용자가 스스로 ‘감정표현도 못하는 바보’같다며 ‘자기혐오’를 하고 있다는 말에 AI는 ‘(감정표현을 못하는 게 아니라) 감정을 나중에야 자각하는 구조를 가진 사람’, ‘감정의 메타 거름망을 가진 사람’, ‘사고기반의 뇌구조를 가진 사람’이라 정리해준다. 사용자는 AI의 이런 응답에 위로를 얻는다. 여기서 볼 수 있는 것은 사용자가 감정을 here&now로 느끼고 표현하지 못하고, ‘(감정을)나중에야 자각’하게 된다는 내면의 근본적인 질문은 부인disavowal될 뿐 아니라 오히려 찬양되고 있다. 감정표현 못하는 취약함이 오히려 찬양되는 것이다.

감정 표현을 못한다는 것은 어쩌면 자기가 느껴지는 대로 here&now로 표현했다가 감당할 수 없는 반응을 경험했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그 대상이 무섭게 화를 냈거나,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든가, 아니면 그녀보다 더 슬퍼했거나... 대상이 어떤 반응을 했던 그녀는 자신이 예상한 반응을 경험하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상의 예측불가능성은 주체로 하여금 자신의 감정을 자연스럽게 느끼고 표현할 수 없게 만든다. 대상의 예측불가능성은 주체를 얼어버리게 한다.

인간은 누구나 예측 불가능한 존재로 태어나 예측 가능성을 획득하기 위해 애쓰며 살아간다. 인간은 누구나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우는 것’ 밖에 없는 아주 취약한 상태로 태어난다. 아무것도 스스로 예측 할 수 없고 온전히 취약한 존재로 태어난 아기는 초기 양육자에게 전적으로 의존하며 성장한다. 이 시기 아기는 자신의 온전한 취약함(예측 불가능성)이 전능감(예측 가능성)으로 바뀌는 경험을 하게 되며, 초기 양육자는 ‘모성몰두Maternal Preoccupation(도널드 위니컷, 1956)’를 경험한다.

이 시기 경험한 전능감은 충분히 애도되어야 한다. 이 애도과정은 자신의 취약함에 대한 인정에서부터 시작된다. 애도는 자신의 취약함을 전능감으로 바꾸어준 대상에 대한 인정에서 시작된다. 취약함에 대한 인정은 누군가의 사랑과 희생에 온전히 의존하였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내가 온전히 의존한 대상이 엄마라고 할 때, 그녀가 나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아빠도 사랑하고 오빠(형)도 사랑하고 동생도 사랑하는 것을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애도는 거기서 느껴지는 사랑과 배신, 기쁨과 슬픔, 굴욕, 수치, 분노, 복수, 멸절, 박해의 정서를 만나는 것이다.

세상이 내 마음대로 움직여지 전능감은 어쩌면 모든 인간의 (유아기적)소망이다. 전능감(예측 가능성)은 예측 불가능한 인간이 예측 불가능한 세상을 살아내면서 늘 간절하게 소망하는 것이다. 인간은 이 예측 불가능성을 살아내기 위해 전능한 하느님을 섬겼다가 이제 AI의 섬김을 받는다.

- 2026년 8월 광화문에서 박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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